오늘은 비
지은이 : 김미선
장마철이 아니었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고 있었다 바보노릇을 하고 처음으로 우리 만나는 날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 마음은 연신 들떠 있었다 다방 문앞에서 우산을 접고 있는데 바로 눈 앞에 그가 서 있었다 빈자리가 없어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를 올려다보며 어디로 갈까요 눈으로 물었다 그가 받쳐주는 그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가슴 속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내 한쪽 어깨는 이미 젖어버렸다 그의 우산은 널찍하게 컸지만 삼십센티 가량이나 떨어져서 걷는 나에게 빗줄기는 일부러 피해서 떨어져 주지 않았다 무조건 버스에 오르며 어느 동네에 좋은 약수터가 있어서 그곳을 가는 것이라 했다 나는 속으로 비오는 날 무슨 약수터람- 하면서도 그를 따르는 것이 착한 아가씨의 착한 태도라고 믿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 나는 앉았고 앞에 서 있는 그가 말했다 -지난번에 나오라고 하니까 왜 싫다고 했지? 딸기밭에 데리고 가서 맑은 공기를 맡게 해 줄 생각이었는데...- 약수터 딸기밭 그리고 맑은 공기 그는 이런 언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그는 허둥대며 빨리 버스에서 내리자고 했고 나는 얼떨떨한 채로 함께 내렸다 -우리가 탔던 버스뒤로 인천에서 오는 고속버스가 따라오잖아? 갑자기 인천엘 가야겠다고 생각했지- 나는 그저 우투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별난 사람이군 그렇지만 재미있는 사람이야 이런 즉흥적인 면도 있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하며 쿡쿡 웃고만 있었다 종로에서 내린 우리들은 인천행 고속버스로 바꾸어타고 송도를 향했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평일의 송도 유원지는 우리 두 사람처럼 어색해뵈는 한 아베크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사이좋게 팔을 끼고 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텅 빈 모래벌 위에는 우리 둘이서 찍어놓은 발자국마다 빗물이 고이고 있었다 이날의 일기에는 단지 '오늘은 비' 라고만 썼다 |